화창한 하늘 아래

지은이 : 말콤 글래드웰

 

우리는 흔히 다른 사람의 의도나 생각을 오해하기 쉽다. 이 책은 사람들이 왜 다른 사람을 잘 못 해석하는 지 그 이유를 찾는 책이다.

 

먼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정직하다고 가정한다.

 

101p
(사람들이) 진실을 말하는 이를 잘 알아보고 거짓말을 하는 이를 몰라본다는 것이다. 우리는 진실을 기본값으로 갖고 있다. (즉) 우리의 가정은 우리가 상대하는 사람들이 정직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은 충분히 의심이 들어 상대방을 더이상 믿지 못할 때까지 계속된다.

132p
(팀) 러바인은 진화 과정을 거치면서 인간이 거짓말을 즉석에서 탐지하는 복잡하고 정확한 기술을 발전시키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꼼꼼히 살펴보느라 시간을 들이는 것은 아무 잇점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잇점은 낯선이가 진실하다고 가정하는데 있다.

133p
진실 기본값과 거짓말의 위험 사이에 상충관계는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하다. 이따금 거짓말에 취약해지는 댓가로 우리가 얻는 것은 사회적 조정이다. 이득은 대단히 크고 그에 비해 비용은 사소하다. 물론 우리는 가끔 기만을 당한다. 이는 일처리 비용일 뿐이다.

 

두번째 이유는 투명성의 가정이다. 사람의 감정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을 통해 알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190p
투명성은 행동과 태도 즉 사람들이 겉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 그들이 속으로 느끼는 방식에 대한 확실하고 믿을 만한 창을 제공한다는 신념이다.

 

그러나 투명성은 태도와 내면이 일치하는 사람들, 진실성의 수준이 그들의 겉모습과 일치하는 사람들에게만 유용하다.

217p
하지만 거짓말쟁이가 정직한 사람처럼 행동하거나 정직한 사람이 거짓말쟁이 처럼 행동하면 우리는 당황한다. ...... 다시 말해 인간은 형편없는 거짓말 탐지기다. 우리가 판단하는 사람의 태도와 내면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에게 우리는 형편없는 거짓말 탐지기다.

 

결국 우리는 온전하지는 않지만 진실의 어떤 수준에서 멈춰야 한다.

288p
진실을 기본값으로 놓는 것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전략이지만 때로는 불가피하게 우리를 미혹한다. 투명성은 언뜻 보면 상식적인 가정이지만 결국 환영임이 드러난다. 하지만 둘 다 동일한 의문을 제기한다. 일단 우리가 위의 결점을 받아들인다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311p
우리가 우리 사이에 있는 낯선 사람에 관해 알아내려고 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확고하지 않다. ...... 우리는 낯선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탐색에 실제적인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절대 진실의 전부를 알지 못할 것이다. 온전한 진실에 미치지 못하는 어떤 수준에서 만족해야 한다. 낯선 이에게 말을 거는 올바른 방법은 조심스럽고 겸손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낯선 사람의 처한 상황이나 장소, 맥락을 살펴 봐야 한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타인을 해석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타인을 대할 때 자제와 겸손이 필요하다.

347p
낯선 사람을 보고 곧바로 결론을 내리지 말라. 낯선 사람의 세상을 살펴보라.

397p
우선 진실을 기본값으로 놓는데 대해 서로에게 벌을 주지 않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다. ...... 다른 사람에 관해 최선의 가정을 하는 것은 현대 사회를 만들어 낸 속성이다. 타인을 신뢰하는 우리의 본성이 모독 당하는 사태는 비극적이다. ...... 또한 우리는 낯선 해독하는 우리의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398p
우리 보통사람들이 (우리가) 알 지 못하는 사람의 심중을 투시력으로 꿰뚫어 보는 완벽한 기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제와 겸손이다.

401p
낯선이와 이야기하는 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가운데 만약 낯선이와의 대화가 틀어졌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할까? (자신 한계를 생각하기 보다) 그 낯선이를 비난한다.

 

사람을 마주하는 일은 늘 어렵다. 상대방이 가까운 사이라고 마찬가지다. 나는 전혀 그런 뜻으로 말하지 않았는데 그는 다르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무척 많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많다. 그 순간 그를 비난해서는 안될 듯 싶다. 우리 모두 동일한 한계를 지닌 사람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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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한스 로슬링, 올라 로슬링, 안나 로슬링 륀룬드

 

우리는 쉽게 서구 나라들을 잘 사는 나라, 그 밖에 나라들을 못 사는 나라로 구분하고 교육이나 건강, 환경 문제 등에서 서구 나라들이 더 낫다는 오해를 한다. 저자는 이러한 편견을 일으키는 원인을 10가지 심리적 본능으로 규정하고 이 본능들을 사실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10가지 본능]

- 간극 본능 : 별개의 두 집단 사이에 서로 극단적 간극이 존재한다는 시각이지만 사실은 사람들은 두 집단 사이에 대부분 존재한다.

- 부정 본능 : 뉴스는 부정적인 면을 보도하는 것이고 나쁜 소식이 좋은 소식보다 더 잘 전달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 직선 본능 : 현 추세가 그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시각이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곡선들이 존재한다.

- 공포 본능 : 인간이 폭력, 감금, 오염 등을 두려워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본능임을 기억해야 한다.

- 크기 본능 : 숫자가 크던 작던 인상적으로 보이지만 다른 수와 비교하거나 다른 수로 나눠 기준을 통일했을 때는 다른 의미가 된다.

- 일반화 본능 : 어떤 설명이 범주를 이용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 범주가 오판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 운명 본능 : 국가나 문화가 변화 없는 것 처럼 보이지만 그 변화가 느린 탓에 똑같아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단일 관점 본능 : 문제를 여러 각도에서 바라봐야 더 정확하게 이해하고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 비난 본능 : 개인을 비난하다 보면 다른 이유에 주목하지 못해 향후 비슷한 문제가 재발하는 것을 방지 할 수 없다.

- 다급함 본능 : 지금 그 결정이 다급하게 느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다급히 결정해야 하는 경우도 드물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씩 차근차근 행동해야 한다.

 

전체적인 맥락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편견없이 사실적으로 문제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 마지막 장에 사실충실성을 일상에서 어떻게 실천할 지 서술해 놓은 부분이 있다. 그 중 어떤 교육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 가장 와 닿는다.

 

- 357p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에게 겸손과 호기심을 가르쳐야 한다. 겸손이란 본능으로 사실을 올바르게 판단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아는 것이고, 지식의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다. 아울러 "모른다"고 말하는 걸 꺼리지 않는 것이다.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을 때 기존 의견을 기꺼이 바꾸는 것이다. 

호기심이란 새로운 정보를 마다하지 않고 적극 받아들이는 자세를 말한다. 아울러 내 세계관에 맞지 않는 사실을 끌어안고 그것이 내포한 의미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

 

최근 한국 사회를 보면 겸손과 호기심을 가진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자기가 몰랐던 것, 틀렸던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자기의 세계관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무조건 배척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결국 교육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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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스콧 갤러웨이

'경제학'이라는 단어에 낚여 읽어보았는데 책 전체 주제는 '행복'이다. 원래 제목이 The Algebra of Happiness 인 이유가 있었다. 저자 본인이 살아오면서 느끼고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어떻게 하면 행복한 인생이 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해 주는 책이다. 기억에 남는 페이지 몇군데 적어 본다.

 

- 39p

물건보다 경험에 투자하라. 물건을 사면 잠깐은 신난다. 하지만 값진 경험을 사면 더 오랬동안 인생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 55p

자신의 열정을 다하라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이미 5번 정도 실패을 맛본 후 재기한 사람이다. 즉 그들은 경험을 통해 포기할 시점을 알아버린 사람이어서 열정을 따라도 끄떡없다는 뜻이다. 당신이 만일 그렇지 않다면 당신이 잘하는 일을 찾아서 그일에 굉장히 뛰어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누군가 당신에게 돈을 주고 요청한 일이지만, 그다지 형편 없지믄 않고, 어쩌면 당신이 잘 할 것 같은일. 그런 일을 하는 것이다.

 

- 116p

어른이 된는 것은 세상만사가 항상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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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모르고 있었다.

윤동주 시인에 대해 너무 알지 못했다. 고작 학교 다닐 때 접했던 서시, 자화상, 별헤는 밤 정도.

 

'소와다리' 라는 출판사에 최근 펴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55년 증보판) 윤동주 유고시집'을 읽었다. 

 

표지는 1955년 증보판 오리지널 디자인이라고 한다. 책 내용도 당시 내용을 그대로 실었기 때문인지 단어나 외래어 표기가 현재와 다소 다르다. 그리고 한자가 많이 섞여 있어 읽어가는 동안 흐름이 종종 끊긴다. 한 두번 읽을 것이 아니라 곁에 놓고 두고두고 곱씹어 가며 읽을 만한 가치 있는 책이라고 본다.

 

또한 책을 처음부터 읽기 보다는 윤동주 시인의 후배인 정병욱선생의 '후기'(199 페이지)와 시인의 동생인 윤일주님의 '선백(先伯)의 생애'(221페이지) 부분을 먼저 읽어 보기를 권한다.

 

1940년대는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었고 식민지였던 조선은 일제의 수탈이 극심했었을 것이다. 그리고 조선 청년들은 전쟁에 끌려가거나 일부는 변절하여 일본제국의 도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한 시기에 시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수 많은 밤을 새워가며 고민했을 것이다.

 

나는 지금껏 윤동주 시인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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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에 대한 기억 - Part 5

2019. 2. 16. 22:47

2017. 4월


주말이 가까워진 어느날. 사무실에서 큰 소리가 났다. 평소 괄괄하기로 이름난 J는 선배 L에게 호통 아닌 호통을 치고 있었다.


"빨리 하라구요!"

"알았어. 할 테니 좀 기다려봐." 


일은 그렇게 마무리 되는 듯 했다. 하지만 그 다음주 L이 나를 찾았다. L은 내 입사동기다. 사번도 한 끝 차이밖에 안 난다. 그는 몇해 전 내가 근무하는 부서로 왔다. 그리고 J은 나의 대학 같은과 후배이기도 하다. 


"야. 나 큰일이다. 주말에 병원 다녀왔다. 약 처방받고 먹고 있다."

"어? 무슨일 인데 그래?"


"너 J 알지? 그 녀석 때문에 내가 잠을 못 자겠다. 그 녀석이 나에게 했던 말, 나에게 보냈던 문자, 카톡 때문에 내가 무척 힘들다."


L은 J가 그동안 했던 말 그리고 문자, 카톡 등의 내용을 이야기해주며 매우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L이 개발부서로 옮긴 뒤 J와 잘 지내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듯 했다. L과 J가 퇴근후 한잔 걸치러 가는 모습도 보여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랬구나. 우선 병원은 그대로 다니고 사내 상담센터에도 가봐. 나도 밑에 있던 후배에게 상처받고 한 3개월 상담센터에 다녔거든. 거기서 이야기 하는 동안 마음이 풀릴 수도 있고 상담사가 해결책을 찾아 줄 수도 있어."

"그래 알았어. 거기도 가볼께. 그리고 사내 폭언, 폭력으로 인사쪽에 올리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니?"


"그것도 방법이 될 수도 있어. 우선은 상담센터부터 가봐." 


한 10년 전 쯤 시청역 근처에서 근무하던 때 L과 L부친 문제에 대해 이야기 나눴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L 부친께서는 폐 내시경 관련 의료사고를 당하신 상태였다. 그때 난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L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그러리라 마음 먹었다.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같이 억울해하고. 


2017년 초부터 나는 수원과 잠실에 2~3일씩 교대로 출근하고 있었다. 그 날 이후 잠실 출근하는 날에는 L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향후 어떻게 할지 의견을 나누곤 했다. 


L은 그룹장, 팀장 면담을 진행했고 인사쪽으로 해당 건을 올렸다. 그룹장, 팀장 면담과정에서 위로받기 보다 오히려 더 상처받은 말을 들은 듯 했다. 그룹장에게는 당신도 문제가 있다는 식의 피드백도 있었다고 했고 팀장으로부터는 다른 부서로 보낼 수도 있다는 협박아닌 협박을 받은 듯 했다. 


그 이후 L은 J와의 싸움에서 회사 권력과의 싸움으로 전환한 듯 했다. 그렇지만 사업부 인사나 전사 인사라고 다르지 않았다. 그러한 과정 중에 J는 L이 언젠가는 선배님 뒤통수도 칠 거라는 말을 남기고 다른 부서로 떠났다.  


L은 그룹장, 팀장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원했고 회사에게는 그들에게 관리자로서 책임을 물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변은 그를 항상 실망시켰다. 지리한 싸움은 여름까지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그는 관리자들과의 면담 녹음내용, 주고 받은 메일 등을 꼬박꼬박 모아두고 있었다. L은 나 이외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조언을 들었고 외부 도움도 고려하는 듯 했다. 


여름이 힘을 잃어갈 무렵 어느날 L과 나는 스타벅스에 마주 앉았다. 그는 그 동안 내용을 외부 매체에게 넘겼다고 했다. 그것이 마지막이라고 했다. 지금껏 싸워왔던 그의 자존심에 대한 마지막 보상인 듯 했다. 나도 잘했다 라는 말 이외 해 줄 수 있는 말이 더 이상 없었다.


그 해 가을, L은 아물지 않은 상처를 간직한 채 시간을 흘려 보냈다. 가을 어느날 L은 김환철이라는 친구를 소개했다. 김환철이라는 친구는 나하고 김철진부장이 있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 


"아프리카 평원에 사는 영양 무리 중 한마리가 사자에게 잡혀 먹히고 있었는데, 옆에 있는 영양들은 그냥 그대로 풀만 뜯어 먹고 있을 뿐이다." 


이 친구도 만만치 않는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L이 회사 권력과 힘들게 싸우고 있는데 당신 둘은 뭐하고 있느냐 라는 말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L이 상처를 딛고 다시 일어서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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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에 대한 기억 - Part 4

2019. 2. 16. 22:40

2017. 12월


이전 부서에 있을 때 업무리더였던 최기언부장과 고과 결과 면담을 가졌다. 최부장은 부서가 옮겨지면서 내 고과가 하향 조정되었다고 했다.  


"괜찮아. 후배들이 더 잘 받아야지. 나는 이제 더 승진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내가 할 일만 꾸준히 있으면 되지 뭐."

"아마 현재 하고 있는 일은 개발 방향이 바뀔 것 같아요. 아직 정해진 것은 없지만 현재 방식은 아니다 라는 것이 윗선의 생각이에요."

"그래 알았어." 


몇일 지난후 김철진부장과 같이 있는데 L이 급히 다가와 말을 걸었다. 


"고과 보셨어요? 어떻게 하실거에요?" 


L은 고과 이의신청을 염두에 두는 듯 했다. 그렇지만 김철진부장이나 나는 그렇게 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것에 의견을 같이 했다. L은 아마도 올해 4월부터 있었던 일 때문에 자신이 고의적인 피해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지난번에도 이의신청 한다며 나에게 신청서 봐 달라고 했지만 이번에는 봐 달라는 소리 하지 않을 것 같다. 고과 결과에 대한 나와 김철진부장의 대응에 실망한 듯 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그동안 종종 있었던 L과 김철진부장 그리고 나 세명의 티타임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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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에 대한 기억 - Part 3

2019. 2. 16. 22:35

2018. 2월 초 


새해가 시작되었지만 하고 있는 일은 불확실했다.

기존 방식으로 더 이상 시스템 구축하지 않는다는 말만 들려올 뿐 어떻게 변경되는지 어떤 계획이 있는지 불투명했다. 


L은 작년 고과에 대한 이의 신청을 진행 중인 것 같았다. 팀장과 면담 과정에서 기존 방식으로 구축된 시스템으로는 올해 평가하지 않겠다는 언급이 있었다고 그에게 전해 들었다. 결국 현재하고 있는 일이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을 뜻했다.  


2월이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는 어느날. 정용석부장이 회의 소집했다. 현재 구축된 시스템에서 발생하고 있는 오류 답변이나 버그 사항들은 잡아 가자는 취지의 회의였다. 이를 위해 시스템 로그를 보는 프로그램을 보여주고 어떻게 진행하면 되는지 설명이 이어졌다.  


나는 현 상황에서 뭐라도 해야 되지 않나 싶어 얼른 해보고 싶었지만, L은 하나 하나 짚어가며 확인해보려고 했다. 회의가 마무리되고 L이 나에게 남으라고 했다.  


"너 왜 그렇게 내 말을 짜르고 그러냐?" 


회의를 끝내고 빨리 해보고 싶은 마음에 L의 말을 중간에 몇차례 끊고 들어간 것에 대한 지적이었다. 


"너 내가 정용석, 김용운과 같아 보이냐?"

"각자 속마음은 어떨지 모르지만 서로 인사 안하고 다니는 건 모두 똑 같아."


"그래? 똑같다는 거지?"

"그래" 


몇 번 더 똑 같냐고 물어본 듯 했다. 난 같다는 대답만 남기고 회의실을 나왔다. 


그 이후 L은 나의 출근인사나 퇴근인사에 그다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어..." 하는 정도 그냥 상투적인 반응에 가까웠다. 가끔 출근 길에 그가 좋아했던 스타벅스 드립커피 들고 들어와 "나눠 줄까?" 하고 권해보았지만 "난 됐어." 라는 답만 돌아왔다. L은 옆자리 김철진부장과도 말을 나누지 않는 듯했다. 


그렇게 그 해 겨울은 끝나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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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에 대한 기억 - Part 2

2019. 2. 16. 22:25

2018. 4. 12 


매년 봄 가을로 실시하는 자원봉사가 있던 날이었다.

오후에 회사 근처 한강 가서 봉사활동하고 사무실로 들어 왔다.

L은 아직 퇴근하지 않고 있었다. 


"우리 잠시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응? 난 너에게 이야기 할 거 없는데? 그리고 나 지금 시간없어."


"그래도 잠시만 시간내줘. 할 이야기 있어."

"그래." 


"내가 너를 지금까지 오해하고 있었던 것 같아. 사과하려구."

"오해? 뭔데?"


"이번에 조직개편되면서 이전 부서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잖아. 작년 11월 부서 바뀌면서 내 고과가 한단계 하향 조정되었다고 들었거든. 그런데 6개월도 안되어 다시 돌아가게 되니 결국 부서 떼었다가 붙였다가 하면서 나도 불이익 받은게 아닌가 싶어서."

"그래서? 뭘 말하려는 건데?"


"누구나 조직 논리에 따라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데 너가 고과에 대해 민감한 것을 보며 뭐 그런 걸 가지고 저러나 하고 너를 오해 했었거든. 미안해."

"미안? 미안한게 정말 그것 뿐이야?"


"무슨 말..." 

"너 지난 2월달에 나한테 뭐라고 했어?"


"뭔..."

"그때 너가 정용석이나 김용운하고 나하고 다 똑같다고 그랬잖아."


"그랬지. 회의 끝나고 각자 속마음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서로 인사 안하고 다니는 건 다 똑같다 라고 했지."

"내가 똑 같냐고 3번 물어봤다. 너는 3번 모두 똑같다고 답했고 회의실을 나가 버렸어. 나가는 너 뒷모습을 보며 내가 얼마나 배신감을 느꼈는지 알어?"


"어떤..."

"얼마나 부귀영화를 누릴려고 정용석, 김용운 같은 사람들에게 딱 붙어가지고. 그쪽에 붙으면 뭐 100억이라도 보장해준다고 하든? 썩은 동아줄이나 잡고 말이야. 그리고 인사? 고등학교 윤리선생님 그러셨어. 사람은 나가고 들어올 때 항상 알리고 다녀야 한다고. 내가 그것을 얼마나 잘 지키고 살아왔는데."


"..."

"그리고 그 이후 그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는 너의 모습이 나의 벌어진 상처를 더 아프게 했다는 것을 알긴 알아? 또 김철진부장과 관계도 그래. 너만 중간에 없으면 나는 김철진부장과도 얼마든지 잘 지낼 수 있어."


"그...래... 내가 그랬는지 미처 몰랐다. 난 그저 당시 상황에서 뭐라도 해야지 않나 싶어 회의에서 논의한 일을 하자고 했던 거야. 그것 뿐이야."

"너희 Y대 출신들은 다들 왜 그러냐? 자기들 밖에 몰라. 내가 말이야. 이 부서에 와서 조성익 같은 사람에게도 당하고 사는 너를 구해줬고, 작년 너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도 내가 얼마나 마음썼는데 너가 그런 식으로 나를 배신해?"


"오해야. 난 전혀 그런 의도가 없었어. 난 그냥 단지... 본의 아니게 너가 상처받았다면 정말 미안해. 사과할께."

"너 사과의 진정성은 앞으로 너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고 결정할께!" 


L은 그렇게 자리를 떠났다. 


이후 나는 정용석, 김용운과 눈인사만 하고 지냈고, 김철진부장과도 가급적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아침 출근해서 정보자료실로 간다든지 외부 교육으로 자리를 비운다든지 그런 식으로 L에게도 내 모습을 가급적 보이지 않게 했다. 작년 다른 사람으로 인해 한번 상처받은 L에게 본의아니게 또 하나의 상처를 주었다는 자책감에서 그랬던 것 같다. 


여름이 한창이던 때 L이 한 2주 가까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별 일은 없을 거야 하고 생각했다. 어느날 그가 출근해서 조그만 선물을 부서원들에게 돌렸다. 여름휴가 겸 식구들과 유럽 갔다 왔다고 했다.


여름 언저리부터 몇차례 지나가는 말로 안녕? 퇴근해? 벌써 출근? 하고 아는 척 했지만 L의 반응은 냉랭했다. 그러한 L의 반응을 접하며 괜한 일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추석명절 이후로는 그에게 그런 말 하는 것도 그만 두었다. 


L이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물론 나였다. 한편으론 그의 마음이 풀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내가 선듯 나설 수 없었다. 


언제까지 이러한 상태로 서로 지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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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에 대한 기억 - Part 1

2019. 2. 16. 22:19

2019. 1. 2


새해 첫 출근하는 날. 

나는 L에게 하루 중 편한 시간에 잠시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 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바로 이야기 하자고 했다.


"다른게 아니고 너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서..."

"회복? 갑자기 왜 그러는데?"


"너하고 알고 지낸지도 30년 가까이 되고 또 너한테 아직 미안함이 있고 해서..."

"회복이라... 넌! 너 자신만 아는 그런 사람에서 변하지 않을 것이고 나도 변하지 않아. 난 다시 상처받기 싫어."


"그래 변하지는 않겠지..."

"불편해? 불편하겠지. 나도 불편해. 그렇지만 내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내 자신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함이야. 너가 떠나든 내가 떠나든 서로 보지 않아야 끝나는 거야."


"그래 알았다. 너의 뜻 알겠다." 


서운한 감정은 없다. L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 지금까지 불안함 속에 지내왔었는데 그가 명확하게 정리해줘서 오히려 고마울 뿐이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다. 동일한 사건이나 현상을 두고 사람들이 서로 극단적인 생각으로 갈리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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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나이 많고 본인 고집만 부리는 사람을 흔히 '꼰대'라고 합니다. 고집 불통에다 자기 철학이라고는 하지만 전혀 공감할 수 없는 사람이죠. 아래 말을 자주 한다면 꼰대라 판단할 수 있다고 합니다. 흠.. 두 세개 해당되는군요. 나도 꼰대인가?


- Who 내가 누군지 알아?

자신의 이야기가 상대방에게 잘 먹혀들어가지 않을 때 자신이 한때 유명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은연 중에 강조하며 너가 뭔대? 하는 식으로 쉽게 말하죠.


- What 니가 뭘 안다고

그 문제는 내가 제일 잘 알고 있고 내 생각이 정답이라는 것을 강요할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 Where 어딜 감히

그만 말하고 내 말 들어 라는 뜻이죠. 상대방이 계속 의견을 내거나 반항(?)할 때 듣게 됩니다.


- When (내가) 왕년에

과거 일은 과거 일입니다. 누구나 한 때는 한 몫 했던 사람들입니다.


- How (니가) 어떻게 나한테

고분고분 말 잘 듣던 상대방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행동하면 이제는 더 이상 내 말이 안 먹히는 구나 라고 탄식하게 되는 거죠.


- Why 내가 그걸 왜?

내 의무는 다하지 않고 권리만 찾으려는 할때 하는 말입니다.


각 항목의 자세한 설명은 아래 출처 참조하세요.


출처: 내가 꼰대라고? 뭔 소리야 (https://brunch.co.kr/@poccatello/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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