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하늘 아래

너무 모르고 있었다.

윤동주 시인에 대해 너무 알지 못했다. 고작 학교 다닐 때 접했던 서시, 자화상, 별헤는 밤 정도.


'소와다리' 라는 출판사에 최근 펴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55년 증보판) 윤동주 유고시집'을 읽었다. 


표지는 1955년 증보판 오리지널 디자인이라고 한다. 책 내용도 당시 내용을 그대로 실었기 때문인지 단어나 외래어 표기가 현재와 다소 다르다. 그리고 한자가 많이 섞여 있어 읽어가는 동안 흐름이 종종 끊긴다. 한 두번 읽을 것이 아니라 곁에 놓고 두고두고 곱씹어 가며 읽을 만한 가치 있는 책이라고 본다.


또한 책을 처음부터 읽기 보다는 윤동주 시인의 후배인 정병욱선생의 '후기'(199 페이지)와 시인의 동생인 윤일주님의 '선백(先伯)의 생애'(221페이지) 부분을 먼저 읽어 보기를 권한다.


1940년대는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었고 식민지였던 조선은 일제의 수탈이 극심했었을 것이다. 그리고 조선 청년들은 전쟁에 끌려가거나 일부는 변절하여 일본제국의 도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한 시기에 시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수 많은 밤을 새워가며 고민했을 것이다.


나는 지금껏 윤동주 시인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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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4월


주말이 가까워진 어느날. 사무실에서 큰 소리가 났다. 평소 괄괄하기로 이름난 J는 선배 L에게 호통 아닌 호통을 치고 있었다.


"빨리 하라구요!"

"알았어. 할 테니 좀 기다려봐." 


일은 그렇게 마무리 되는 듯 했다. 하지만 그 다음주 L이 나를 찾았다. L은 내 입사동기다. 사번도 한 끝 차이밖에 안 난다. 그는 몇해 전 내가 근무하는 부서로 왔다. 그리고 J은 나의 대학 같은과 후배이기도 하다. 


"야. 나 큰일이다. 주말에 병원 다녀왔다. 약 처방받고 먹고 있다."

"어? 무슨일 인데 그래?"


"너 J 알지? 그 녀석 때문에 내가 잠을 못 자겠다. 그 녀석이 나에게 했던 말, 나에게 보냈던 문자, 카톡 때문에 내가 무척 힘들다."


L은 J가 그동안 했던 말 그리고 문자, 카톡 등의 내용을 이야기해주며 매우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L이 개발부서로 옮긴 뒤 J와 잘 지내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듯 했다. L과 J가 퇴근후 한잔 걸치러 가는 모습도 보여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랬구나. 우선 병원은 그대로 다니고 사내 상담센터에도 가봐. 나도 밑에 있던 후배에게 상처받고 한 3개월 상담센터에 다녔거든. 거기서 이야기 하는 동안 마음이 풀릴 수도 있고 상담사가 해결책을 찾아 줄 수도 있어."

"그래 알았어. 거기도 가볼께. 그리고 사내 폭언, 폭력으로 인사쪽에 올리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니?"


"그것도 방법이 될 수도 있어. 우선은 상담센터부터 가봐." 


한 10년 전 쯤 시청역 근처에서 근무하던 때 L과 L부친 문제에 대해 이야기 나눴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L 부친께서는 폐 내시경 관련 의료사고를 당하신 상태였다. 그때 난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L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그러리라 마음 먹었다.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같이 억울해하고. 


2017년 초부터 나는 수원과 잠실에 2~3일씩 교대로 출근하고 있었다. 그 날 이후 잠실 출근하는 날에는 L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향후 어떻게 할지 의견을 나누곤 했다. 


L은 그룹장, 팀장 면담을 진행했고 인사쪽으로 해당 건을 올렸다. 그룹장, 팀장 면담과정에서 위로받기 보다 오히려 더 상처받은 말을 들은 듯 했다. 그룹장에게는 당신도 문제가 있다는 식의 피드백도 있었다고 했고 팀장으로부터는 다른 부서로 보낼 수도 있다는 협박아닌 협박을 받은 듯 했다. 


그 이후 L은 J와의 싸움에서 회사 권력과의 싸움으로 전환한 듯 했다. 그렇지만 사업부 인사나 전사 인사라고 다르지 않았다. 그러한 과정 중에 J는 L이 언젠가는 선배님 뒤통수도 칠 거라는 말을 남기고 다른 부서로 떠났다.  


L은 그룹장, 팀장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원했고 회사에게는 그들에게 관리자로서 책임을 물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변은 그를 항상 실망시켰다. 지리한 싸움은 여름까지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그는 관리자들과의 면담 녹음내용, 주고 받은 메일 등을 꼬박꼬박 모아두고 있었다. L은 나 이외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조언을 들었고 외부 도움도 고려하는 듯 했다. 


여름이 힘을 잃어갈 무렵 어느날 L과 나는 스타벅스에 마주 앉았다. 그는 그 동안 내용을 외부 매체에게 넘겼다고 했다. 그것이 마지막이라고 했다. 지금껏 싸워왔던 그의 자존심에 대한 마지막 보상인 듯 했다. 나도 잘했다 라는 말 이외 해 줄 수 있는 말이 더 이상 없었다.


그 해 가을, L은 아물지 않은 상처를 간직한 채 시간을 흘려 보냈다. 가을 어느날 L은 김환철이라는 친구를 소개했다. 김환철이라는 친구는 나하고 김철진부장이 있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 


"아프리카 평원에 사는 영양 무리 중 한마리가 사자에게 잡혀 먹히고 있었는데, 옆에 있는 영양들은 그냥 그대로 풀만 뜯어 먹고 있을 뿐이다." 


이 친구도 만만치 않는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L이 회사 권력과 힘들게 싸우고 있는데 당신 둘은 뭐하고 있느냐 라는 말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L이 상처를 딛고 다시 일어서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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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2월


이전 부서에 있을 때 업무리더였던 최기언부장과 고과 결과 면담을 가졌다. 최부장은 부서가 옮겨지면서 내 고과가 하향 조정되었다고 했다.  


"괜찮아. 후배들이 더 잘 받아야지. 나는 이제 더 승진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내가 할 일만 꾸준히 있으면 되지 뭐."

"아마 현재 하고 있는 일은 개발 방향이 바뀔 것 같아요. 아직 정해진 것은 없지만 현재 방식은 아니다 라는 것이 윗선의 생각이에요."

"그래 알았어." 


몇일 지난후 김철진부장과 같이 있는데 L이 급히 다가와 말을 걸었다. 


"고과 보셨어요? 어떻게 하실거에요?" 


L은 고과 이의신청을 염두에 두는 듯 했다. 그렇지만 김철진부장이나 나는 그렇게 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것에 의견을 같이 했다. L은 아마도 올해 4월부터 있었던 일 때문에 자신이 고의적인 피해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지난번에도 이의신청 한다며 나에게 신청서 봐 달라고 했지만 이번에는 봐 달라는 소리 하지 않을 것 같다. 고과 결과에 대한 나와 김철진부장의 대응에 실망한 듯 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그동안 종종 있었던 L과 김철진부장 그리고 나 세명의 티타임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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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2월 초 


새해가 시작되었지만 하고 있는 일은 불확실했다.

기존 방식으로 더 이상 시스템 구축하지 않는다는 말만 들려올 뿐 어떻게 변경되는지 어떤 계획이 있는지 불투명했다. 


L은 작년 고과에 대한 이의 신청을 진행 중인 것 같았다. 팀장과 면담 과정에서 기존 방식으로 구축된 시스템으로는 올해 평가하지 않겠다는 언급이 있었다고 그에게 전해 들었다. 결국 현재하고 있는 일이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을 뜻했다.  


2월이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는 어느날. 정용석부장이 회의 소집했다. 현재 구축된 시스템에서 발생하고 있는 오류 답변이나 버그 사항들은 잡아 가자는 취지의 회의였다. 이를 위해 시스템 로그를 보는 프로그램을 보여주고 어떻게 진행하면 되는지 설명이 이어졌다.  


나는 현 상황에서 뭐라도 해야 되지 않나 싶어 얼른 해보고 싶었지만, L은 하나 하나 짚어가며 확인해보려고 했다. 회의가 마무리되고 L이 나에게 남으라고 했다.  


"너 왜 그렇게 내 말을 짜르고 그러냐?" 


회의를 끝내고 빨리 해보고 싶은 마음에 L의 말을 중간에 몇차례 끊고 들어간 것에 대한 지적이었다. 


"너 내가 정용석, 김용운과 같아 보이냐?"

"각자 속마음은 어떨지 모르지만 서로 인사 안하고 다니는 건 모두 똑 같아."


"그래? 똑같다는 거지?"

"그래" 


몇 번 더 똑 같냐고 물어본 듯 했다. 난 같다는 대답만 남기고 회의실을 나왔다. 


그 이후 L은 나의 출근인사나 퇴근인사에 그다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어..." 하는 정도 그냥 상투적인 반응에 가까웠다. 가끔 출근 길에 그가 좋아했던 스타벅스 드립커피 들고 들어와 "나눠 줄까?" 하고 권해보았지만 "난 됐어." 라는 답만 돌아왔다. L은 옆자리 김철진부장과도 말을 나누지 않는 듯했다. 


그렇게 그 해 겨울은 끝나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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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4. 12 


매년 봄 가을로 실시하는 자원봉사가 있던 날이었다.

오후에 회사 근처 한강 가서 봉사활동하고 사무실로 들어 왔다.

L은 아직 퇴근하지 않고 있었다. 


"우리 잠시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응? 난 너에게 이야기 할 거 없는데? 그리고 나 지금 시간없어."


"그래도 잠시만 시간내줘. 할 이야기 있어."

"그래." 


"내가 너를 지금까지 오해하고 있었던 것 같아. 사과하려구."

"오해? 뭔데?"


"이번에 조직개편되면서 이전 부서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잖아. 작년 11월 부서 바뀌면서 내 고과가 한단계 하향 조정되었다고 들었거든. 그런데 6개월도 안되어 다시 돌아가게 되니 결국 부서 떼었다가 붙였다가 하면서 나도 불이익 받은게 아닌가 싶어서."

"그래서? 뭘 말하려는 건데?"


"누구나 조직 논리에 따라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데 너가 고과에 대해 민감한 것을 보며 뭐 그런 걸 가지고 저러나 하고 너를 오해 했었거든. 미안해."

"미안? 미안한게 정말 그것 뿐이야?"


"무슨 말..." 

"너 지난 2월달에 나한테 뭐라고 했어?"


"뭔..."

"그때 너가 정용석이나 김용운하고 나하고 다 똑같다고 그랬잖아."


"그랬지. 회의 끝나고 각자 속마음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서로 인사 안하고 다니는 건 다 똑같다 라고 했지."

"내가 똑 같냐고 3번 물어봤다. 너는 3번 모두 똑같다고 답했고 회의실을 나가 버렸어. 나가는 너 뒷모습을 보며 내가 얼마나 배신감을 느꼈는지 알어?"


"어떤..."

"얼마나 부귀영화를 누릴려고 정용석, 김용운 같은 사람들에게 딱 붙어가지고. 그쪽에 붙으면 뭐 100억이라도 보장해준다고 하든? 썩은 동아줄이나 잡고 말이야. 그리고 인사? 고등학교 윤리선생님 그러셨어. 사람은 나가고 들어올 때 항상 알리고 다녀야 한다고. 내가 그것을 얼마나 잘 지키고 살아왔는데."


"..."

"그리고 그 이후 그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는 너의 모습이 나의 벌어진 상처를 더 아프게 했다는 것을 알긴 알아? 또 김철진부장과 관계도 그래. 너만 중간에 없으면 나는 김철진부장과도 얼마든지 잘 지낼 수 있어."


"그...래... 내가 그랬는지 미처 몰랐다. 난 그저 당시 상황에서 뭐라도 해야지 않나 싶어 회의에서 논의한 일을 하자고 했던 거야. 그것 뿐이야."

"너희 Y대 출신들은 다들 왜 그러냐? 자기들 밖에 몰라. 내가 말이야. 이 부서에 와서 조성익 같은 사람에게도 당하고 사는 너를 구해줬고, 작년 너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도 내가 얼마나 마음썼는데 너가 그런 식으로 나를 배신해?"


"오해야. 난 전혀 그런 의도가 없었어. 난 그냥 단지... 본의 아니게 너가 상처받았다면 정말 미안해. 사과할께."

"너 사과의 진정성은 앞으로 너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고 결정할께!" 


L은 그렇게 자리를 떠났다. 


이후 나는 정용석, 김용운과 눈인사만 하고 지냈고, 김철진부장과도 가급적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아침 출근해서 정보자료실로 간다든지 외부 교육으로 자리를 비운다든지 그런 식으로 L에게도 내 모습을 가급적 보이지 않게 했다. 작년 다른 사람으로 인해 한번 상처받은 L에게 본의아니게 또 하나의 상처를 주었다는 자책감에서 그랬던 것 같다. 


여름이 한창이던 때 L이 한 2주 가까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별 일은 없을 거야 하고 생각했다. 어느날 그가 출근해서 조그만 선물을 부서원들에게 돌렸다. 여름휴가 겸 식구들과 유럽 갔다 왔다고 했다.


여름 언저리부터 몇차례 지나가는 말로 안녕? 퇴근해? 벌써 출근? 하고 아는 척 했지만 L의 반응은 냉랭했다. 그러한 L의 반응을 접하며 괜한 일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추석명절 이후로는 그에게 그런 말 하는 것도 그만 두었다. 


L이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물론 나였다. 한편으론 그의 마음이 풀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내가 선듯 나설 수 없었다. 


언제까지 이러한 상태로 서로 지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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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 2


새해 첫 출근하는 날. 

나는 L에게 하루 중 편한 시간에 잠시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 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바로 이야기 하자고 했다.


"다른게 아니고 너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서..."

"회복? 갑자기 왜 그러는데?"


"너하고 알고 지낸지도 30년 가까이 되고 또 너한테 아직 미안함이 있고 해서..."

"회복이라... 넌! 너 자신만 아는 그런 사람에서 변하지 않을 것이고 나도 변하지 않아. 난 다시 상처받기 싫어."


"그래 변하지는 않겠지..."

"불편해? 불편하겠지. 나도 불편해. 그렇지만 내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내 자신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함이야. 너가 떠나든 내가 떠나든 서로 보지 않아야 끝나는 거야."


"그래 알았다. 너의 뜻 알겠다." 


서운한 감정은 없다. L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 지금까지 불안함 속에 지내왔었는데 그가 명확하게 정리해줘서 오히려 고마울 뿐이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다. 동일한 사건이나 현상을 두고 사람들이 서로 극단적인 생각으로 갈리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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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나이 많고 본인 고집만 부리는 사람을 흔히 '꼰대'라고 합니다. 고집 불통에다 자기 철학이라고는 하지만 전혀 공감할 수 없는 사람이죠. 아래 말을 자주 한다면 꼰대라 판단할 수 있다고 합니다. 흠.. 두 세개 해당되는군요. 나도 꼰대인가?


- Who 내가 누군지 알아?

자신의 이야기가 상대방에게 잘 먹혀들어가지 않을 때 자신이 한때 유명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은연 중에 강조하며 너가 뭔대? 하는 식으로 쉽게 말하죠.


- What 니가 뭘 안다고

그 문제는 내가 제일 잘 알고 있고 내 생각이 정답이라는 것을 강요할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 Where 어딜 감히

그만 말하고 내 말 들어 라는 뜻이죠. 상대방이 계속 의견을 내거나 반항(?)할 때 듣게 됩니다.


- When (내가) 왕년에

과거 일은 과거 일입니다. 누구나 한 때는 한 몫 했던 사람들입니다.


- How (니가) 어떻게 나한테

고분고분 말 잘 듣던 상대방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행동하면 이제는 더 이상 내 말이 안 먹히는 구나 라고 탄식하게 되는 거죠.


- Why 내가 그걸 왜?

내 의무는 다하지 않고 권리만 찾으려는 할때 하는 말입니다.


각 항목의 자세한 설명은 아래 출처 참조하세요.


출처: 내가 꼰대라고? 뭔 소리야 (https://brunch.co.kr/@poccatello/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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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지하철 2호선으로 출근한다.

출근할 때면 잠실새내역을 거쳐간다.

지하철역 이름이 '신천'에서 '잠실새내'역으로 변경된지  2년 정도 된 듯하다.

 

당시 '잠실새내로 바뀌었네?' 하는 정도로 지나쳤지만 

오늘 아침 변경한 이유가 뭘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이름을 변경할 때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신천'이라는 이름이 같은 2호선내 '신촌'과 무척 혼동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지하철역이 있는 위치가 실제 신천동이라는 법정 행정구역과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 이유가 있었다면 '신천'의 본래 이름인 '새내'로 변경하는 것 까지는 이해된다.

그러나 '잠실'이라는 말이 왜 붙었을까?

 

그냥 드는 생각은 서초, 강남, 잠실이라는 강남 3구의 프리미엄. 그것이 아니었을까 한다.

소위 말하는 서울내에서도 잘 사는 동네라는 네임 밸류. 그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한다.

 

이름으로 인해 다소나마 핸디캡이나 불이익을 받는 경우 

이름을 변경하는 것은 이해 구할 수 있는 문제이다.

 

하지만 이미 (이름에 관계없이) 다른 사람들 보다 뭔가 더 누리거나 갖고 있는데도

이름 변경하여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이기심이 아닐까.

 

잠실새내 사는 사람들의 가치관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어느 누구나 자신만의 관점과 사고방식이 있으니.

그렇지만 '잠실새내'라는 단어를 들을 때면 왠지 개운치 않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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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민신부님의 책 '손 내미는 사랑 : 사제지만 사제인 줄 모르는 당신에게' 187p에 나오는 글입니다.

 

내가 무슨 권한으로 남의 습성을 바꿀 수 있겠는가

자기 자신도 듣지 않는 말을 어찌 남에게 들으라고 강요할 수 있겠는가

라고 물으시며토마스 아 켐피스의 '준주성범'에 나오는 글귀를 인용하십니다. 스스로 반성 많이 되는 글입니다. 


준주성범(또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à Kempis) 


너는 네 자신을 마음대로 못하여 네가 원하는 대로 하지 못하는데

어찌 다른 사람이 네 뜻대로 되기를 바랄 수 있으랴?

 

우리는 남들이 완전한 사람이 되기글 희망하지만

우리 자신의 허물은 고치지는 않는다

 

우리는 남을 엄히 꾸짖어 그 과실을 고치기를 원하나

우리 자신을 꾸짖어 그 과실을 고치기는 싫어한다.

 

다른 사람은 규칙으로써 구속을 받아야 한다 하면서도

우리는 조금치도 구속되기를 싫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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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결국 탄핵되었다.


4년전 그 분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과연 보통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상식과 동일한 상식이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대통령의 딸로서 학창생활을 보냈을 것이고 한나라의 영부인으로서 젊은 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동급생들과 치열하게 경쟁해야만 하는 현실을 알까. 

한 가족을 이루고 그 가정을 책임지기 위해 세상 사람들과 부딪끼며 살아 가야만 하는 현실을 알까. 

아이들을 낳고 기르면서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아파하고 좌절해야 하는 현실을 알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사람은 자아를 형성해 왔던 환경에 지배를 받는가 보다. 

주위 사람으로부터 섬김만을 받아 온 환경, 자신의 말이면 그 어느 누구 반박하지 못하는 환경

그런 환경이 소통하지 못하고 자기 생각에만 갇혀 있는 대통령을 만들었고 그 결과로 오늘 탄핵이 되었나 싶다.


이제는 남의 말을 귀담아 듣고 존중하는 대통령이 나왔으면 한다.

또한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고 무조건 상대를 배척하고 적대시하는 말이나 행동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고 반대 의견을 무조건 적대시 하지 않는 것은 우리와 같은 일반 시민에게도 해당될 것이다.


보수나 진보라는 진영 논리를 떠나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탄핵이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이 방법밖에는 없었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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