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하늘 아래

2017. 4월


주말이 가까워진 어느날. 사무실에서 큰 소리가 났다. 평소 괄괄하기로 이름난 J는 선배 L에게 호통 아닌 호통을 치고 있었다.


"빨리 하라구요!"

"알았어. 할 테니 좀 기다려봐." 


일은 그렇게 마무리 되는 듯 했다. 하지만 그 다음주 L이 나를 찾았다. L은 내 입사동기다. 사번도 한 끝 차이밖에 안 난다. 그는 몇해 전 내가 근무하는 부서로 왔다. 그리고 J은 나의 대학 같은과 후배이기도 하다. 


"야. 나 큰일이다. 주말에 병원 다녀왔다. 약 처방받고 먹고 있다."

"어? 무슨일 인데 그래?"


"너 J 알지? 그 녀석 때문에 내가 잠을 못 자겠다. 그 녀석이 나에게 했던 말, 나에게 보냈던 문자, 카톡 때문에 내가 무척 힘들다."


L은 J가 그동안 했던 말 그리고 문자, 카톡 등의 내용을 이야기해주며 매우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L이 개발부서로 옮긴 뒤 J와 잘 지내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듯 했다. L과 J가 퇴근후 한잔 걸치러 가는 모습도 보여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랬구나. 우선 병원은 그대로 다니고 사내 상담센터에도 가봐. 나도 밑에 있던 후배에게 상처받고 한 3개월 상담센터에 다녔거든. 거기서 이야기 하는 동안 마음이 풀릴 수도 있고 상담사가 해결책을 찾아 줄 수도 있어."

"그래 알았어. 거기도 가볼께. 그리고 사내 폭언, 폭력으로 인사쪽에 올리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니?"


"그것도 방법이 될 수도 있어. 우선은 상담센터부터 가봐." 


한 10년 전 쯤 시청역 근처에서 근무하던 때 L과 L부친 문제에 대해 이야기 나눴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L 부친께서는 폐 내시경 관련 의료사고를 당하신 상태였다. 그때 난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L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그러리라 마음 먹었다.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같이 억울해하고. 


2017년 초부터 나는 수원과 잠실에 2~3일씩 교대로 출근하고 있었다. 그 날 이후 잠실 출근하는 날에는 L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향후 어떻게 할지 의견을 나누곤 했다. 


L은 그룹장, 팀장 면담을 진행했고 인사쪽으로 해당 건을 올렸다. 그룹장, 팀장 면담과정에서 위로받기 보다 오히려 더 상처받은 말을 들은 듯 했다. 그룹장에게는 당신도 문제가 있다는 식의 피드백도 있었다고 했고 팀장으로부터는 다른 부서로 보낼 수도 있다는 협박아닌 협박을 받은 듯 했다. 


그 이후 L은 J와의 싸움에서 회사 권력과의 싸움으로 전환한 듯 했다. 그렇지만 사업부 인사나 전사 인사라고 다르지 않았다. 그러한 과정 중에 J는 L이 언젠가는 선배님 뒤통수도 칠 거라는 말을 남기고 다른 부서로 떠났다.  


L은 그룹장, 팀장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원했고 회사에게는 그들에게 관리자로서 책임을 물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변은 그를 항상 실망시켰다. 지리한 싸움은 여름까지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그는 관리자들과의 면담 녹음내용, 주고 받은 메일 등을 꼬박꼬박 모아두고 있었다. L은 나 이외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조언을 들었고 외부 도움도 고려하는 듯 했다. 


여름이 힘을 잃어갈 무렵 어느날 L과 나는 스타벅스에 마주 앉았다. 그는 그 동안 내용을 외부 매체에게 넘겼다고 했다. 그것이 마지막이라고 했다. 지금껏 싸워왔던 그의 자존심에 대한 마지막 보상인 듯 했다. 나도 잘했다 라는 말 이외 해 줄 수 있는 말이 더 이상 없었다.


그 해 가을, L은 아물지 않은 상처를 간직한 채 시간을 흘려 보냈다. 가을 어느날 L은 김환철이라는 친구를 소개했다. 김환철이라는 친구는 나하고 김철진부장이 있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 


"아프리카 평원에 사는 영양 무리 중 한마리가 사자에게 잡혀 먹히고 있었는데, 옆에 있는 영양들은 그냥 그대로 풀만 뜯어 먹고 있을 뿐이다." 


이 친구도 만만치 않는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L이 회사 권력과 힘들게 싸우고 있는데 당신 둘은 뭐하고 있느냐 라는 말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L이 상처를 딛고 다시 일어서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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