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하늘 아래

2018. 4. 12 


매년 봄 가을로 실시하는 자원봉사가 있던 날이었다.

오후에 회사 근처 한강 가서 봉사활동하고 사무실로 들어 왔다.

L은 아직 퇴근하지 않고 있었다. 


"우리 잠시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응? 난 너에게 이야기 할 거 없는데? 그리고 나 지금 시간없어."


"그래도 잠시만 시간내줘. 할 이야기 있어."

"그래." 


"내가 너를 지금까지 오해하고 있었던 것 같아. 사과하려구."

"오해? 뭔데?"


"이번에 조직개편되면서 이전 부서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잖아. 작년 11월 부서 바뀌면서 내 고과가 한단계 하향 조정되었다고 들었거든. 그런데 6개월도 안되어 다시 돌아가게 되니 결국 부서 떼었다가 붙였다가 하면서 나도 불이익 받은게 아닌가 싶어서."

"그래서? 뭘 말하려는 건데?"


"누구나 조직 논리에 따라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데 너가 고과에 대해 민감한 것을 보며 뭐 그런 걸 가지고 저러나 하고 너를 오해 했었거든. 미안해."

"미안? 미안한게 정말 그것 뿐이야?"


"무슨 말..." 

"너 지난 2월달에 나한테 뭐라고 했어?"


"뭔..."

"그때 너가 정용석이나 김용운하고 나하고 다 똑같다고 그랬잖아."


"그랬지. 회의 끝나고 각자 속마음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서로 인사 안하고 다니는 건 다 똑같다 라고 했지."

"내가 똑 같냐고 3번 물어봤다. 너는 3번 모두 똑같다고 답했고 회의실을 나가 버렸어. 나가는 너 뒷모습을 보며 내가 얼마나 배신감을 느꼈는지 알어?"


"어떤..."

"얼마나 부귀영화를 누릴려고 정용석, 김용운 같은 사람들에게 딱 붙어가지고. 그쪽에 붙으면 뭐 100억이라도 보장해준다고 하든? 썩은 동아줄이나 잡고 말이야. 그리고 인사? 고등학교 윤리선생님 그러셨어. 사람은 나가고 들어올 때 항상 알리고 다녀야 한다고. 내가 그것을 얼마나 잘 지키고 살아왔는데."


"..."

"그리고 그 이후 그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는 너의 모습이 나의 벌어진 상처를 더 아프게 했다는 것을 알긴 알아? 또 김철진부장과 관계도 그래. 너만 중간에 없으면 나는 김철진부장과도 얼마든지 잘 지낼 수 있어."


"그...래... 내가 그랬는지 미처 몰랐다. 난 그저 당시 상황에서 뭐라도 해야지 않나 싶어 회의에서 논의한 일을 하자고 했던 거야. 그것 뿐이야."

"너희 Y대 출신들은 다들 왜 그러냐? 자기들 밖에 몰라. 내가 말이야. 이 부서에 와서 조성익 같은 사람에게도 당하고 사는 너를 구해줬고, 작년 너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도 내가 얼마나 마음썼는데 너가 그런 식으로 나를 배신해?"


"오해야. 난 전혀 그런 의도가 없었어. 난 그냥 단지... 본의 아니게 너가 상처받았다면 정말 미안해. 사과할께."

"너 사과의 진정성은 앞으로 너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고 결정할께!" 


L은 그렇게 자리를 떠났다. 


이후 나는 정용석, 김용운과 눈인사만 하고 지냈고, 김철진부장과도 가급적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아침 출근해서 정보자료실로 간다든지 외부 교육으로 자리를 비운다든지 그런 식으로 L에게도 내 모습을 가급적 보이지 않게 했다. 작년 다른 사람으로 인해 한번 상처받은 L에게 본의아니게 또 하나의 상처를 주었다는 자책감에서 그랬던 것 같다. 


여름이 한창이던 때 L이 한 2주 가까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별 일은 없을 거야 하고 생각했다. 어느날 그가 출근해서 조그만 선물을 부서원들에게 돌렸다. 여름휴가 겸 식구들과 유럽 갔다 왔다고 했다.


여름 언저리부터 몇차례 지나가는 말로 안녕? 퇴근해? 벌써 출근? 하고 아는 척 했지만 L의 반응은 냉랭했다. 그러한 L의 반응을 접하며 괜한 일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추석명절 이후로는 그에게 그런 말 하는 것도 그만 두었다. 


L이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물론 나였다. 한편으론 그의 마음이 풀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내가 선듯 나설 수 없었다. 


언제까지 이러한 상태로 서로 지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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